바닥
배롱나무에 빨간 나비 꽃들이 샐 수조차 없이 달려 있다
지난여름 장맛비로 머리를 감고 가을 찬비에 깨끗이
목욕한 상으로 영광의 꽃들을 달 수 있었을 것이다
마치 국가 대표 선수가 빨간 홍 메달을 걸고 의기양양
제일 높은 시상대에 서있는 모습으로 백일홍을 달고
배롱나무는 두 손을 번쩍 들고 서있다
백일홍을 보니 어느 수필가의 문구(文句)가 생각난다.
지렁이가 붉게 꽃망울을 터뜨린 배롱나무숲 그늘로 들어선다.
하루를 힘껏 가본들 천 리를 갈 것인가. 만 리을 갈 것인가.
그 때 문득 수만리 밖에서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비상하는
지렁이의 환상에 사로잡힌다.
그 뒤를 우주가 조용히 뒤따르고 있다.
그리고 가장 순한 눈빛으로 포복한 바닥을 겸허히
내려다보는 게 아닌가.
굼틀 그리면 기어가는 지렁이의 모습이 안타까워
마치 지렁이가 용이 되어 하늘을 날라 올라서면 하는
안타까움을 표현 한 것처럼 생각 되지만 사실은 바닥의
위대함을 찬양한 것 아닐까
바닥이야 말로 천의 얼굴을 가진 변화무상한 존재다
지렁이가 바닥을 억만년 동안 주름 잡아 본들
바닥은 그대로 있다
바닥은 퇴고 적부터 누구도 거부 하지 않았다.
하늘에서 비가 솟아져 내려도 바닥은 겸허히 물그릇이 되어 주었고
날카롭게 나무들이 뿌리를 쑤셔 박아도 나 아프니 하지 마
소리 하지 않는다.
바닥이야 말로 위대함이 끝없이 펼쳐진 신의 영역이다
오늘도 우리들은 바닥을 딛고 있다
그러하여도 바닥이 나 아프니 하지 마 소리 하던가
바닥은 모든 것들을 포용한다.
사람들이 만든 콘크리트 괴물들도 받쳐주고
사람들이 만든 고철덩어리들이 핥키고 달려가고
나 아프다 소리 지르지 않는다.
바닥은 영원할 것이다
당신이 아니 우리들이 살아 있을 동안은
바닥은 언제나 지탱하게 해 줄 것이다
사람들이여!
바닥의 위대함에 겸손하고 존경하는 마음가짐이
내가 바닥을 딛고 있을 존재가 될 것이다
지금 한바탕 소나기가 내려 물이 고여도 바닥은 웃고만 있다.
바닥이여! 난 그대를 너무나 존경한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해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