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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바람처럼 그렇게

작은공간

겨울들에서

해량 2021. 9. 17. 12:24

겨울들에서/해량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지금

언젠가 거닐던 겨울의 들녘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나무들이 아직 잎은 다 버리지도 않았는데

벌써 겨울이 그리운 것은

지금 나의 마음이 겨울에 살고 있기 때문 일거다.

 

그 곳에는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식어 버린 농부들의 땀을 싣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얼음을 덮어 쓴 바위들은 근엄하고 침묵했다

길섶에 누워있는 색 바랜 풀들은 질서 없이

어느 화가의 낙서처럼 그려져 있었다.

 

화려했던 가을

황금빛 나락들이 가득했던 들을 지키던 그는

갈기갈기 찢긴 누더기 옷을 입고

칼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는지

그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빈들에서

무엇을 지키려고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었는지.

한 때는 들을 지키던 영웅이었는데

 

계곡을 타고 작은 도랑에 도착한 물은

하얀 거품을 일구고 사르르 얼어붙었다

갈대숲 언저리에 작은 집을 짓고 살던

들쥐들이 따스한 햇살이 그리워 고개를 내밀 때

그들을 노리는 또 다른 그들이 있었으니

겨울들은 먹이사슬 질서가 분명했다.

 

농부의 손길이 미처 닫지 못한 작은 공간에는

낯설지 않은 참새들이 몰려 와 한바탕 축제를 열었다

그들이 겨울들의 주인이었지

아무 대가를 치려지 않고 넓은 들에 무혈입성 한

그들의 축제는 언제 끝이 났는지 궁금하다

 

겨울들녘이 그립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황량한 겨울들을 걷고 싶다

가을비가 내리는 오늘이면 무엇 하리

내 가슴속에 가득히 자리 잡고 있는 허수아비 그가 없는데

겨울이 오면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해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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