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삶/허주
나보다 나이가 스무 살이나 많은 사람을 난 형이라고 부른다.
지금 그는 나이가 들다 보니 키가 작아져 나와 나란히 서면
머리끝이 나의 목에 온다.
그가 하는 말
자기도 젊었을 때는 나보다 키가 컸고 주위의 여자들에게 인기가
너무 좋아서 귀찮아서 여자들을 피해 다녔다고 막걸리 한 잔 얼큰하게
취하면 넋두리 아닌 자랑을 하고는 했다.
어느 날
그들 잘 아는 지인을 만나서 그의 안부를 물었더니
아직 건강하게 잘 살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정말 유머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주위 사람들을 끄는 힘이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딸들에게 용돈 몇 푼 얻어 온 것을 제법 티가 나게 섰다
단 돈 천원을 쓰더라도 반드시 내가 천원 낸다 하면서 어시 되었다.
그 형님이 오늘 따라 이렇게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니 보고 싶다
그는 지인에게 빌린 땅에다 먹지도 않으면서 일 년 내 채소 농사를 지어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다
작은 컨테이너 박스에 농기구며 작은 탁자 하나 놓고서 동네사람들에게
이곳이 나의 별장이라고 자랑을 하고는 했다
나도 몇 번 가서 된장에 풋고추 찍어 먹어면서 별장 구경을 하고
막걸리 대접을 받은 적이 있다 그가 너무 보고 싶다
어느 날 오일장에 가서 안주꺼리를 좀 사서 형님 오늘 노포동 장에 가서
안주 좀 사 왔는데 같이 막걸리 한 잔 하자고 했더니 나보고 하는 말
니도 이제는 다 됐다 오일장 다니면 인생 끝났다고 하면서 껄껄 웃던 그가
오늘 오일장에 다녀와서 몇 푼주고 사온 맹태를 보니 그때 안주로 먹은
그 명태가 생각이 난다.
그렇다 나이가 들면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다.
가도 그렇게 반갑게 맞이해 주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나이든 사람들은 집에만 있어야 하는 줄 안다 그렇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살아온 인생 정리 때문에 생각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기력이 떨어지니 빨빨거리고 다닐 수도 없다
그래서 노인은 항상 외롭다
말을 좀 많이 하면 노인이 무슨 말이 저렇게 많으냐고 하고.
무슨 일에 나서면 노인이 나선다고 말하고 노인들은 정말 할 것이 없다
그러니까 오직 한곳 오일장이다
오일장이 되어야만 노인들은 멋 부리고 벗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절모에 아끼던 지팡이 끌고 나서면 최고의 멋쟁이로 변신한다.
그런데 젊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 모습을 곱게 봐 주겠는가
그 냥 아무 쓸모없는 노인으로 볼 뿐이다.
하지만 노인이 있었기에 젊은이가 있는 것이다 노인들이 있었기에
나라가 발전이 되었고 시회의 질서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젊은이들 때문에
노인들이 외로운 것이 아닐까 싶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했다
그런데 예술이 무엇인지 모르는 그들에게는 살아온 옛 날들이 더 중요 한 것이다
인생이 짧듯이 누구나 금방 노인이 된다. 윤리를 중요시 하는 사회다
그런데 지금은 윤리라는 것을 맛볼 수 없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그만큼 노인들이 설 곳이 없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제는 노인들은 오일장에 가야만 대우를 받는다. 그 곳에는 오래 동안
거래 한 주막의 주모가 있기 때문이다
그 주모인들 노인이 좋아서 반갑게 맞아 줄까 다 노인들의 쌈짓돈 노리고
허튼 웃음 짓는 것을 정말 그렇다 이제는 노인들이 갈 곳이 없다
오직 갈 곳은 노인정 그 곳도 인기 없는 노인은 갈 수가 없다.
그렇다면 갈 곳은 한 곳 또 다른 세상의 강을 건너는 것뿐이다.
어느 노인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노인은 집에 있으나 산에 누워 있으니
같다는 말이 그 때는 그 말의 큰 의미를 몰랐는데
이제 와서 이해가 되는 것은 나도 서서히 노인이 되어 간다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