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바람처럼 그렇게
잼난 이야기
내가 짝퉁 심은하를 속이더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서러움의 날들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반드시 오리니...” 대학 시절 수첩에 적혀 있던 푸시킨의 시다. 나는 그 시를 무슨 마술 주문처럼 중얼대면서 젊은 시절을 견뎌냈다. 그 때는 그렇게 멋있어 보이던 시가 왜 지금은 가소롭게만 느껴질까? 나는 젊은 날의 숱한 희망과 좌절들이 웅크리고 앉아있는 수첩을 잘게 찢고 또 찢어서 쓰레기통에 쑤셔 넣었다. (대학 후배... 낮고 어눌한 목소리) “언니 뭐해? 응? 뭐? 내가 누구시냐고? 언니! 벌써 내 목소리도 까먹었어? 그래~! 은하잖아. 심은하~” 쓰레기통에 널부러진 수첩의 잔해들을 바라보면서 쓸쓸한 감상에 빠져들 무렵 걸려온 대학 후배의 전화다. 얘는 아직도 자기가 심은하인 줄 안다. 후배 : “언니 아직도 거기 사나? 아유~ 여태 그러고 있어? 우리 동네로 이사 오라니까~ 그게 뭐니 정말? 완전 시골스럽게.” 춘자 : “너는 그럼 여태 거기서 사니? 숨 막히게 그런데서 어떻게 사니? 그래도 자연을 벗하면서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거지. 난 싫다 얘!” 후배 : “언니, 그런데서 살다가 애 교육은 어떻게 할 거고, 애 시집은 어떻게 보낼려구 그래? 적어도 강남에는 살아야 선이라도 좀 들어오지” 춘자 : “난 말이지. 줏대 없이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애들 진짜 한심하더라?” 후배 : “언니 시골에 오래 살다 보니까, 사람이 진짜 농협스러워졌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고, 사는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데~. 거기서 백날 그렇게 궁상떨고 있어봐야 애가 뭐 변변한 신랑감 하나 만나겠어?” 나는 ‘그렇게 좋은 데서 살아서, 니네 애들이 그렇게 멍청한 거냐?’하고 말하려다 입술을 자근자근 깨물어 가며 참았다. 참고로, 얘는 ‘여자는 얼굴만 예쁘면 미래가 보장 된다’는 신앙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닮은 데라곤 둘 다 생머리라는 점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으면서, 자신이 심은하를 닮았다고 박박 우기고 다니다가, 주변의 썰렁한 반응을 감지하고서는 급기야 성형외과를 찾아가 <페이스 오프>를 시도하기에 이른다. 가지고 간 심은하의 사진과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생떼를 부리다가, 그런 실력이 있으면 내가 왜 여태 장동건이 안 됐겠느냐’고 되묻던 의사한테 개망신을 당하고 도망쳐 나왔다는 전설은 당시 대학가의 괴담으로 떠돌기까지 했다. 강남 산다고 잘난 척 하는 이 여자가 바로 그 여자다. 짝퉁 심은하! 춘자 : “얘, 그나저나 너 아직도 심은하 팔고 사니? 웬만하면 이젠 좀 바꿔라 얘. 심은하가 연예계 은퇴한지가 언젠데~. 왜 많잖아. 전지현도 있고, 송혜교, 김태희. 뭐 많네. 이젠 어떻게 업데이트 좀 하지?” 후배 : “으흐흐... 근데 글쎄 우리 애들 아빠는 아직도 이 세상에서 심은하가 제일루 이쁜 것 같대. 으흐흐... 내가 지금도 그렇게 좋은가봐. 으헝”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내 입에서는 결국 그 말이 튀어 나오고 말았다. 춘자 : “너는 좋겠다. 짝퉁 심은하라서...” 후배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내게 물었고, 난 오리발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춘자 : “응? 뭐? 내가? 언제? 에이~ 니가 잘 못 들었겠지~? 너 어디 허하니? 헛소릴 다 듣고... 어머! 보약 좀 먹어야겠다 얘~! 내가 그랬잖아. 너는 짝은 심은하라서 진짜 좋겠다구... 사실 니가 심은하 보다는 키가 좀 작지 않니? 아닌가? 큰가? 하여간...” 후배는 나에게 그게 말이 되느냐고 다그쳤고, 나는 그건 당연히 말이 되는 거라며 박박 우겼는데, 결국 후배가 손을 드는 바람에 나의 기권승이 됐다.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지가 참아야지. 또 안 참으면 어쩔건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던데... 서러움의 날들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온다고 하던데... 그럼~! 그럼. 그나저나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 누구랑 전화만 했다하면 꼭 이 꼴이다. 사나운 강아지는 콧등이 아물 날이 없다던데...에궁~ 이젠 이쁘게 살아야지. 간절한 춘자씨 중에서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