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나의 영혼에 찬물 한 잔 들이키니
정신이 바짝 든다.
넓은 베란다 창문으로 보이는 것은 아무의미 없는
네온들뿐이다.
그 중에서 내가 하느님이다 하면서
우뚝 서 있는 십자가를 바라보노라니
오늘따라 소름 돋는 것은 무슨 까닥이란 말인가.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아무 관심 없이 살아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 갈 계획인 것을
저 십자가가 눈치 체 버렸다는 것인가.
책상머리에 쪼그리고 안자
낡은 노트를 펼치니 습관처럼 쓰 놓았던 낙서가
지렁이 기어가듯 꾸물꾸물 기어간다.
그 중에서 하나의 지렁이 글귀를 보았다.
“나는 어디서 왔으며
“나는 누구이며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 왔고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
그 애매모호한 낙서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어떤 상대와 비교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
비교를 한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질투라는 것
사람으로 태어 난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지 된다는 것
재물을 모으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고
질투의 화신이 되어서도 안 되는 것
이런 생각들을.
사람들은 자기 방법 되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사는 데는 공식이 없다
자기 스스로 문제를 내고 그 문제에 맞는 공식을 적용하여
풀어 나가는 것이 사는 것이다
그래서 사는 것이 쉽고도 어려운 것인지 모른다.
삶의 공식은 복잡하면 재미가 없다.
단순하게 문제를 만들고 더 단순하게 풀어야
재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각자 인생에서 가장 쉬운 문제를
내어 가장 쉽게 풀어 보자
그러면 무엇이 남는지 그 나머지를 가지고 미래를 설계해
보는 시간 가지자.
밤이 깊어간다
오늘밤은 때 이른 가을의 전설 귀뚜라미 소리를 들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구월은 왔고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노란은행잎을 주워서 책갈피로 쓸 생각을 하니 벌써
가을이 선뜻 다가온 느낌이다.
행복한 밤 보내시길 바라면서.
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