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허주
산모퉁이 돌아 작은 텃밭에 한그루 서 있는 늙은 나무에
매화가 활짝 피어 있었다.
혹독한 겨울바람이 너무 많이 부는데 굳세게 버티고 있는 매화에
겨울이 시샘이라도 하듯이 강한 바람을 때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매화의 질긴 생명력에 고개를 숙이고
폭풍한설 몰아치는 기나긴 겨울을 이겨 내어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매화의 절개가 보였다.
해마다 이맘쯤이면 찾아오는 꽃샘추위가 대단하다
따뜻한 남부 지방에는 때 이런 꽃이 피고 북쪽에는 때늦은 눈이 내려
절경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는 올해는 눈을 볼 수 없을 것 같다 벌써 매화가 피어 버렸으니
눈이 내린다 하여도 감동이 있겠는가.
그래도 어김없이 찾아온 꽃샘추위가 진정한 겨울의 맛을 느끼게 하여
고맙기는 하다
며칠 전 지인이 시산제 지내고 왔다 하기에 벌써 산사람들이 꽃을 찾아서
산으로 모여 들 때가 되었구나 싶었다.
그에게 물어 보았다 혹시 진달래가 피어더냐고
아직은 피지는 않았지만 피려고 준비를 다 했더라는 말을 듣고
계절은 사람들을 배신하지 않고 바뀌어 가는구나 생각하며
자연의 신비함과 위대함이 교차 되었다.
해마다 찾아온 겨울 까마귀들과 이제는 이별을 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어제 보니 넓은 들을 까맣게 물 드리고 때지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오늘은 바람이 이렇게 많이 부니 아마 숲속으로
피신하였는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쓸쓸한 들을 지키는 그가 있었으니 그가 누구일까
농부에게 버림받은 그는 누구일까
봄 듣기만 하여도 참 좋다
꽃샘추위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는 늦은 겨울 추위 참 좋은 밀이다
그런데 꽃샘추위가 막 피어난 매화를 괴롭히고 있으니
얄밉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어차피 봄을 맞이하려면 막바지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머지않아 세상에 꽃 대궐이 지어 질 것이다
겨울이 아무리 끈질기게 버티고 있어도 봄은 이기지 못한다.
봄이 오면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