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열리다
오늘은 개천절이다
개천절은 '하늘이 열린 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개천이란 본디 환웅이 처음으로 하늘을 열고 백두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뜻을 펼치기 시작한 사건을 가리킨다.
보통 개천은 BC 2333년 10월 3일에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날은 실제로는 단군이 나라를 세운 날이었다.
개천 및 개국의 연대를 역사적 사실로 믿는 이들은 실제 개천은 단군의
개국보다 124년 앞선 상원갑자년(上元甲子年) 10월 3일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지만,
신화적 연대에 불과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개천절이 경축일로 제정된 것은 1909년 중창(重創)된 나철의 대종교에 의해서이다.
이는 상해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도 그대로 이어졌으며, 8·15해방 후에도
이를 계승하여 개천절을 국경일로 공식 제정하여 해마다 기념하고 있다.
개천절이 음력 10월 3일로서 우리의 고유한 제천행사의 시기와 일치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즉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음력 10월을 상달이라고 부르며 1년 농사를 마감하고
수확한 곡식으로 감사하는 제천의식을 거행해왔다.
이는 고구려의 동맹·부여의 영고·예맥의 무천 등으로 확인되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후 고려나 조선시대에서도 국난 때마다 단군신앙이 부활되고 사당이 건립되었으며,
여러 지역의 민속에서는 지금까지도 해마다 10월에 제천의 형식을 띤 동제를 거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개천절을 10월로 정한 기본적 근거가 되었다. 지금의 개천절은 양력 10월 3일로 되어 있으나,
여러 단군숭봉단체는 전통에 따라 음력 10월 3일에 제천의식을 행하고 있다.
백과사전에서 인용
처음 우리나라 이름은
단군이 세운 고조선 입니다
원래는 조선 이었으나 후에 고려 후기때
태조 이성계가 조선 을 세웠기때문에 앞에 옛 고 를 붙여 고조선 이라합니다단군 왕검이십니다. 청동기 시대에 여러 전설과 함께 우리나라에 고조선을 건국하셨습니다. 원래 조선인데 나중에 이성계가 조선세울때 구분하기 위해 고조선으로 부릅니다.
우리나라 역사는 고조선때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역사는 책으로 기록해야 남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그 처음이 고조선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중국의 한나라에게 멸망당하고 여러 부족이 활동하다 고구려 신라 백제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전에는 석기시대라 봅니다. 선사시대요.
단군왕검
한민족의 시조(始祖)로 받드는 고조선(古朝鮮: 檀君朝鮮)의 첫 임금.
천제(天帝)인 환인(桓因)의 손자이며, 환웅(桓雄)의 아들로, BC 2333년 아사달(阿斯達: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하였다. 한국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고조선과 단군에 관한 기록으로는 중국의 《위서(魏書)》를 인용한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편(紀異篇)>에 실려 있는 자료가 있을 뿐, 정사(正史)인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아 대조를 이룬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記)》, 권남(權擥)의 《응제시주(應製詩註)》에도 《삼국유사》와 비슷한 기술이 보이나, 단군에 관한 문제를 다룰 때에 우선 《삼국유사》의 기록을 사료(史料)로서 인용하고, 여기에 더 많은 신빙성을 둔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옛날 환인의 서자 환웅이 세상에 내려와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므로, 아버지가 환웅의 뜻을 헤아려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가 사람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의 신단수(神壇樹)에 내려와 신시라 이르니, 그가 곧 환웅천왕이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善) ·악(惡)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렸다. 이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 속에 살면서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일렀다. 곰과 범은 이것을 먹고, 곰은 37일 만에 여자의 몸이 되고 범은 못참아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그와 혼인해주는 이가 없어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배게 해달라고 축원하였다.
이에 환웅이 잠시 변하여 혼인하여서 아이를 낳으니, 그가 곧 단군 왕검(王儉)이다. 왕검이 당고(唐高: 중국의 가장 오랜 역사 고전인 상서 첫머리에 올라 있는 제왕) 즉위 50년인 경인(庚寅: 50년은 丁巳이니 틀린 듯하다)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으며, 이어서 백악산(白岳山)의 아사달로 옮긴 뒤 그 곳을 궁홀산(弓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 하였다. 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주(周)나라 호왕(虎王)이 즉위한 기묘년(己卯年)에 기자(箕子)를 조선의 임금으로 봉한 후 장당경(藏唐京: 황해도 신천군 文化面)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山神)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다” 이 개국신화는 이후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라 많은 해석이 나왔다.
한 예로서 이 신화는 고조선의 한 부족(部族)신화이던 것이, 훗날 고려시대에 대몽항쟁(對蒙抗爭) 등 민족의 단합이 요구되는 시대를 맞아서 민족의 시조로 받들게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단군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는 《삼국유사》의 편찬시기가 앞에서 언급한 시대와 거의 같다는 점도 유의할 만하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평양에 사당을 짓고, 단군과 고구려의 동명왕(東明王)을 함께 모시기도 하였다. 한편, 민족의 형성과정과 관련된 단군신화에서 중심이 되는 곰 숭배사상이 한국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등지에 널리 퍼져 있던 고(古)아시아족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조상신이라는 점에서, 단군신화의 시대와 성격을 한국의 신석기시대 주민과 관련시키는 견해도 있다.
물론 이 신화를 청동기시대의 산물로 보는 견해도 있고, 지배자의 출현을 빛내는 신화로 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단군신화 시대를 무문토기문화(無文土器文化)와 관련시키면서 환웅족(桓雄族)의 등장에서 그 의미를 찾으려는 견해도 있다. 이와 반대로, 역사과학의 입장에서 신화라는 것은 고대인의 한 관념형태이므로 단군신화를 곧 역사적 사실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원래 신화는 역사적인 사실 바로 그 자체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 속에 담겨 있는 역사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으므로 어떤 맥락으로든 간에 신화의 의미는 풀려야 한다. 그러나 단군의 신화가 그대로 왕조사(王朝史)인 것처럼 해석하는 것도 무리이다. 아무튼 단군신화는 한민족이 수난을 당하고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족의 단합을 요구하는 구심체적(求心體的) 역할을 해왔다.
2012-09-28 17:32
출처 : 네이버지식인출전
- 단기 4345주년 -
개천절 노래
정인보 작사 김성태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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