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의 운동회/김 여 하
갇힌 하늘이건만 구름은 자유로이 드나들었고 묶인 꽃이건만 나비에게 철조망은 없었다.
이날은 대구 근교 모 교도소의 가을운동회 날. 만국기는 휘날리지 않아도 브라스밴드의 흥겨운 가락은 여느 운동회 날처럼 가슴을 울렁이게 했다.
짧아서 더욱 긴 여운을 남기는 교도소장의 치사의 말과 눈치 없이 긴 귀빈들의 인사말에 이어 곧 본 대회가 시작되었다.
교도소 대운동장 정면에 차일을 치고 본부석을 차렸으며, 좌우로 빙 둘러가며 각 각 공장별 대표와 응원석, 가족석 등이 마련되어 질서정연하게 있었다.
이날은 일 년에 단 한번인 운동회 날, 그러나 아무나 참가할 수 없고 장기수에다가 모범수만이 자격이 있으며, 이 날 하루는 가족을 초빙하여 같이 교도소 안을 구경할 수 있는 개방교도소 날이다.
오랜만에 모범수들은 가족들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따스한 정성의 점심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뜻깊은 날이다.
남자들의 무거운 것 들고 달리기, 씨름, 닭싸움 경기 등에 이어 여자들의 에어로빅 경기가 경기장의 열기를 달궜다.
이어 경기는 가족업고 달리기 대회. 출발선에서는 자기 가족들을 찾고 부르는 소리가 한참 요란하더니 반주소리와 함께 사상초유의 ‘천천히 달리기 경기’가 벌어졌다. 반백의 무기수는 머리에 서리가 내린 모친을 업고, 아직 불이 빨간 소년수는 고개를 들지 못하는 아빠를 업고 어느 가장 죄수는 양 어깨에 너 댓살 된 아들과 딸을 앉혀서 천천히, 가장 느린 속도로 달리는(?) 것이었다.
연주곡은 ‘어머님은혜’. 저녁 9시 취침시간 때면 날마다 흘러나오는 곡이었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깊다 하리오. 어머님의 은혜는 가이 없어라’ 밤마다 그 노래를 들으며, 부르며 얼마나 그리웠던 가족들인가. 부모형제, 보고픈 아내, 자식들이었던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한결 흰머리가 느신 어머니, 뼈만 남은 아내의 새 같은 몸뚱아리, 철모르고 아빠의 목마 위에서 웃는 아이들. 그 숙연한 분위기에 본부석도 관중석도 소리없는 눈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이들이 순간의 잘못으로 무슨 죄를 지었던, 어떤 천인공노할 나쁜짓을 했던지 지금 이들이 흘리고 있는 참회의 눈물은 세상 어느 아침이슬 보다 귀하고 아름답고 참되리라.
노래가 일절 이절이 끝나고 또 계속되어도 경기는 멈추지 않아 진행자가 몇 번이나 독촉을 한 뒤에야 결승점에 도달했다.
1등도 꼴찌도 없는 이상한(?) 경기였다. 모두가 우승자였다.
자주 들어도 지겨워지지 않는 말 중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법언이 있다. 순간의 유혹에, 격분에 자제 못하여 범한 죄일지라도 그 죄를 미워하되 인간을 용서하라는 뜻일게다.
한때는 숯검댕이를 만진 손일지라도 새로 씻고 노동하고, 기도하면 선량한 ‘새 손’이 되는 것이 아닐까.
만적이 말하거늘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느냐’고 했다.
도둑, 강도, 살인자도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한때의 과오인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잘못을 두둔하자는 뜻이 아니다.
조직폭력이나 강간, 경제사범 같은 계획범죄나 악질범은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단순폭행죄나, 생계 유지형 범죄들을 생각하면 이해도 갈만 하지 아니한가.
사마리아 여인을 돌로 칠 자신이 없는 모든 이들은 서로 서로 용서하고 또 용서받아야 한다.
그 운동회가 열린지 20년이 흘렀다. 그 무기수는 석방되었을까.
어디에서 보금자리를 새로 꾸렸을까. 그 소년수는 지금쯤 사회의 일원으로 제몫을 다해가고 있을는지. 지금도 교소도 키 큰 담장 안에 사루비아며 데이지, 베고니아, 해바라기는 철마다 철모르고 피고 또 질까.
취침시간에 ‘어머니은혜’는 오늘도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