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강가에서
세월의 강가에서 /이인원
아침 햇살이 하도 좋아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순간, 아직도 봄이 되기를 아쉬워하는 찬바람 한 자락이 성큼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그 찬바람마저도 부드러운 촉감으로 느껴지는 것을 보면 이 바람이 풀과 나무들을 간지럼 태워 꽃도 피우고 새싹도 돋게 하는가 보다.
봄기운 속에서 아침 일찍 이부자리 홑청을 뜯었다. 며칠 전부터 빨아야겠다고 별러 왔는데 햇살 덕분에 부지런을 떨기로 했다. 뜯어 놓은 홑청이 세탁기로 두 번은 빨아야 할만큼 많은 분량이지만 생각난 김에 해치우기로 작정했다.
일일이 빨아서 풀 먹여 다림질하고 꿰매야 하는 하얀 옥양목 홑청이 번거롭기는 하지만 새로 푸새한 홑청으로 갈아 끼운 날 저녁, 살에 닿는 그 차갑고도 까슬까슬한 옥양목 감촉이 좋아 좀처럼 바꿀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사서 고생한다며 침대로 바꾸라는 친구들도 있고 궁상떤다고 놀리는 친지들도 있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고생이니 누가 뭐라고 한들 그저 웃고 만다.
그러나 아파트에서는 커다란 홑이불을 널어 말릴 장소가 없는 것이 큰 불편이다. 이렇게 한꺼번에 여러 장의 홑이불을 빠는 날이면 우리 집 거실의 이쪽 저쪽으로 줄이 매어진다. 집안 전체가 마치 빨래 건조대 같아지고 밀가루 풀 냄새 또한 진동하지만 그래도 깨끗하게 빨아진 홑이불들이 대견하기만 하다.
어린 시절, 나는 종종 강가로 빨래하러 가는 집안 어른들을 따라 나서곤 했다. 커다란 함지박에 잔뜩 빨래를 담아 머리에 이고 가는 어른들 뒤에 빨래 방망이를 들고 깡충거리며 따라 갔었다. 강가에 자리를 잡은 어른들은 빨래를 하는 한편에서 커다란 가마솥을 걸고 빨래 삶을 준비를 했다. 마치 잔칫집 마당에 걸린 솥처럼 장작불을 지펴 놓고 빨래를 삶아냈다. 뜨거운 빨래들을 기다란 나뭇가지로 건져내어 강물에 헹구고 빨래 방망이로 두드려 빨았다. 그렇게 빨아진 하얗다 못해 푸른색을 띄는 홑이불들이 강가 이곳 저곳에 널리면 우리들은 그 사이로 술래 잡기하듯 뛰어 다녔고 어른들은 질색을 하셨다.
그런 날이면, 어머니는 밤늦도록 옥양목에서 반들반들 윤이 나도록 다듬이질을 하셨다. 일일이 손으로 빨아 다듬이질까지 해야 하는 숱한 어려움을 어린 내가 어찌 알았을까. 그냥 강가 빨래터에 따라가면 물장난을 할 수 있고 싸 가지고 간 점심을 먹는 재미, 밤늦도록 장단 맞춰 두드리는 다듬이 소리가 좋았을 뿐이다.
결혼을 하고 얼마 후, 내 손으로 처음 홑청을 바꿔 끼웠다. 어머니는 일 못하는 내가 걱정스러워 이부자리 숫자에 맞춰 여분의 홑청을 혼수 틈에 넣어 주셨다. 그러니 단지 쓰던 홑청을 뜯어내고 새 홑청으로 바꾸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일을 시작한 때가 아침 일을 대충 끝냈을 무렵이니까, 아마 10시경에 시작한 것이 저녁을 준비할 시간쯤 되어서야 끝났다. 지금이라면 그까짓 요 홑청 두개를 새로 꿰매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그 때는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였는지. 두개의 요 홑청을 새로 갈아 끼우고 나서 왈칵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너무 힘들었고 대견해서 울었을까, 아니면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울었을까.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오늘, 아침에 뜯어 푸새를 마치고 다림질까지 해서 새로 꿰맸는데도 한낮이 설핏 지난 시간이고 보면 지나온 세월이 나를 이처럼 생활에 익숙한 숙련공으로 만들었나 보다. 나는 가끔은 40년쯤 세월의 강을 훌쩍 거슬러 올라가, 내 어린 날 물결 찰랑이던 강가의 빨래터를 꿈결처럼 떠올리곤 한다. 그 날의 나는 빨래 방망이를 손에 들고 어른들의 등뒤에서 팔딱팔딱 뛰어 가던 어린 계집아이가 된다. 그러나 오늘의 나는 어느새 그 때의 어머니 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은 중년이 되어 있으니 세월의 흐름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깨끗하게 새로 꿰매 놓은 이부자리들을 바라보니 분명 오늘밤에는 잠도 잘 오게 생겼다. 하루종일 봄볕에 널어 말린 이부자리에서 고소한 햇볕 냄새까지 솔솔 풍기니 더 말 할 필요도 없겠지. <계간 수필 춘추 1999, 겨울호 통권 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