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에서
어느 날 이었던가,
빠를 것도 느릴 것도 없는 시간의 완행열차에 실려 가다
어느 간이역에 문득 내려섰던 것.
어느 따스한 봄날의 나들이 이었을지.
무더운 여름날의 휴가길 이었을지,
그도 아니면 삽상한 가을날의 여행길 이었을지.
아니다.
사랑을 잃어 정처 없던 마음,
그 마음 누일 곳 없어 시리게 떠돌던 어느 겨울날,
간이역 이정표 아래에 서 있는 나를 보았으니,
떠나온 곳과 떠나갈 곳이 아프게 나뉘어져 있는
이정표 아래에 서서
멀어져가는 기차의 뒷모습을 오래오래 바라보았으니,
그리고 그 간이역에서
서럽고 막막하던 마음이 해지는 벌판 너머로 사라지고,
어느새 편안해진 마음이 어스름 땅거미로 내려앉는 것.
나그네여!
어디에도 깃들일 곳 없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얼마나 고요하고 평화로운가.
희미한 역사의 불빛 아래서 이렇게 부치지 않을
편지를 쓰나니.
나그네여!
노엽고 안타까웠던 지난 일들이 모두 꿈만 같습니다.
세상 부침에 연연하여 흘러가던 때에는 결코
내려설 수 없었던 간이역에 홀로 앉아있습니다.
사랑을 잃고,
사랑하는 마음을 잃고,
덧없어 하는 마음 얻지 못했더라면,
알 수 없었겠지요.
집착하여 머물러 있고자 했던 역들도 스쳐 지나가는
길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삶의 노정에는 오히려 이런 쉼표 같은 간이역들이
더욱 많아서
때때로 삭막한 역사의 한 귀퉁이에 앉아
말없음표로 쉬었다 가기도 하는 것임을.
한동안 길동무가 돼 주었던 그대에게 감사합니다.
가는 길 내내 평안하시길........
흐르는 음악
딕훼밀리 (Dick Family) - 흰구름 먹구름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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