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1

강남 간 제비가 안오는 이유

해량 2017. 3. 22. 10:05

나 어릴 적의 봄은 시냇가로부터 왔다.
시냇물이 크고 작은 돌 틈 사이를 이슬처럼 맑고 청아한 소리로 노래하며 흘러갈 무렵,
버들가지들은 힘차게 물기를 빨아들여 한껏 탄력 넘치는 몸매를 만들어갔다.
그 즈음이면 개울 옆 둑방과 보리밭 언저리에는
아낙네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치면서
비로소 오랜 마법에서 풀린 세상처럼 생기를 띄었다.
그 때 봄 햇살 보다 더욱 밝던 엄마의 미소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엄마의 그런 얼굴이 그렇게 보기가 좋아서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웃어댔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봄이 되면 고향에서의 어린시절이 사무치게 그립다.
어느새 나는 그 당시의 엄마 나이가 되고 말았고,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딸이 그 때의 나처럼 내 치마폭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딸 : “엄마, 요즘은 제비도 우리나라에 오기 싫어한대”
춘자 : “응? 제비가? 아니 왜?”
딸 : “글쎄... 내 생각에는... 음... 아마... 엄마가 무서워서 그런 거 같애”
춘자 : “너는 내가 그렇게 무섭니?”
딸 : “응! 엄마는 아빠도 막 이겨 먹잖아. (컬투조) 그러니까 엄마는 공포명사인거죠?”
춘자 : “그렇구나. 엄마는 공포명사인거구나.
그럼 너는 엄마를 생각하면 기분이 막 짠해지고 그러는 건 전혀 없니?”
딸 : “짠해지는 거? 그게 뭔데?”
춘자 : “짠해진다.... 음... 뭐 이를테면, 그러니까... 가령...”
딸 : “가령은 또 뭐야?”
춘자 : “응... 가령은... 이를테면... 음... 아! 됐어. 얘! 너 지금 장난하니?”

책을 그토록 많이 읽는 애가 왜 그다지도 모르는 말이 많은지 모르겠다.
이렇게 잘못 걸려들었다간 오늘 밤새 이러고 있어야 한다.
우리 딸은 한번 질문하는 쪽에 필이 꽂혔다 하면
둘 중 하나가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물어보는 짓을 하는 아이다.
그런 점은 외탁을 한 것 같다.
우리 아버지는 유난히 호기심이 많은 분이셨다.
길을 지나다가도 남들이 싸우고 있으면 왜 싸우는지를 알아야만 가던 길을 가셨고,
5일장에 약장수라도 떴다하면 맨 앞자리로 차지하고 앉으셔야 했던 분이시다.
그건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황신혜는 왜 이혼을 했는지,
고현정의 재산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일본은 또 왜 저러고 있는지,
하다못해 아래층에 사는 복길할머니는 왜 영감님을 미워하는지...
나는 반드시 알아내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나저나 강남 간 제비는 왜 우리나라에 오기 싫은 것일까?

딸 : “엄마... 강남에는 부자들이 많다며?
그래서 부자제비로 보일려고 그냥 강남에서 눌러 사는 건 아닐까?”
춘자 : “얘! 그 강남이 그 강남이냐?”
딸 : “달라? 그럼 그 강남은 무슨 강남이고, 또 그 강남은 무슨 강남인데?”
춘자 : “응~! 그 강남은 거시기고, 그 강남은 거시기야. 알았지?”
딸 : “에이~! 도대체 엄마는 아는 게 뭐가 있어?”

그러게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학창시절엔 나도 공부를 좀 한 것 같은데...
벌써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 것만 같다.
강남 간 제비는 내가 무서워서 안 오는 게 아니라,
내가 무식해서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안 오는 건 아닐까?
그래도 봄에는 제비가 좀 와줘야 폼이 나는 건데...
오늘부턴 신문이라도 열심히 읽어서 좀 유식해 져야겠다.

간절한 춘자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