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2

정족 산에 가다

해량 2017. 2. 21. 11:24




    정족 산에 가다/허주 비온 뒷날 정족 산 계곡에는 물이 넘쳐 흘렸다 겨우내 가보지도 못하고 오래 만에 가보니 계곡의 형태가 조금 바뀌어 있었다. 아직 얼음이 녹지 않은 길을 조심조심 걸어 오르니 계곡 가장자리 햇볕이 잘 드는 곳에는 이름 모를 새싹들이 파랗게 고개를 내밀고 나를 반겨 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정족 산에 가면 언제나 기분이 좋았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그곳이 나의 놀이터이자 쉼터였다 그런데 겨울이라는 핑계로 나는 정족 산을 배신하고서 우연히 생각 난 것처럼 찾아가도 나를 반겨 주니 정족 산이야 말로 진정한 나의 벗이다 등산로를 따라서 오르니 아직 길이 미끄러웠다. 조심조심 오르다 어느 시점 운흥사지 부도 탑이 있는 곳에서 잠시 머물렷다. 언제나처럼 나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숙연해진다 어느 이름 모를 고승들의 영혼과 역사가 살아서 굼틀거리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부도 탑을 감싸고 있는 대숲이 더욱 역사의 깊이를 느끼게 하고 아름드리 참나무들이 역사의 깊이를 알게 하고 고승의 손때가 묻은 큰 바위에 자라고 있는 파란 이끼들이 더욱 신비로움을 만들고 있었다. 새삼 고승의 너털웃음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에 잠시 빠졌다 고승의 목탁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앙상한 나무 가지에 제법 세찬 바람이 때렸다. 봄바람이라 하기에는 너무 차가운 바람에 나무 가지들이 음흉한 소리를 내면서 흔들렸다 겨울은 봄에게 산을 쉽게 내어 주지 않을 모양새를 보고서 계절의 싸움도 사람들이 삶의 전쟁터에서 성을 지키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보다 더 치열함을 보았다 그러나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 했다 봄은 산에도 머지않아 올 것이다 내려오는 길에 예전에 친구가 살던 작은 초가에서 발길이 멈춰졌다 지금은 주인이 바뀌었지만 그 때는 항상 그곳에 들려 막걸리 한 잔 하고 내려오곤 하였는데 그가 없으니 그런 해택이 없어 조금 서운 했지만 그런 추억은 만들어 준 친구가 고마웠고 보고 싶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소식이 끊긴지 오래 되었다 사람들이 산을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답이 명백하게 서 있다 산은 누구나 받아 주기 때문이다 산은 누구도 차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도 산을 찾고 산에서 짐승들이 사는 것이다 산은 생명을 주고 생명을 거둬 가는 곳이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중년 이후 산을 즐겨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답도 분명하다 자연으로 돌아갈 연습을 하는 것이기에 찾는 것이다. 나는 이 순간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세상에 봄이 오면 그곳에 찾아가 매년 보았던 꽃들을 만나고 언제나 찾아와 둥지를 틀던 그들과 파란 잎을 달고 노래 부르던 그들과 마음씨 넓은 계곡을 찾아서 그들이 있는 그곳에서 흐르는 세월을 벗 삼아 어제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