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은 들에서부터/허주
오래 만에 언젠가 한번 가 보았던 식당에 그 주인의
구수한 된장찌개가 생각이 나서 들렸다
혼자서 식당에 가기는 누구나 좀 그렇다
한 그릇 시킨다는 것이 미안해서 이다 그런데 여주인이
참 친절하게도 맞이해 주었다
언제나처럼 직접 집에서 만든 음식들이 차려졌다
돌아오는 길 잠시 차를 세우고 들길을 따라 걸었다
논두렁은 말라 비틀어져 간혹 부는 바람에 하얀 먼지만
날리고 들길 옆 개울에는 녹기 시작한 얼음 사이로 미나리들이
고개를 쏙 내밀고 따뜻한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메마른 논두렁에도 씀바귀들이 돋아나고 쑥들은 제법 자라서
쑥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정녕 봄은 넓은 들에서 부터 시작 되었다.
이틀 전 꽃샘추위가 휩쓸고 가버린 들에는 언제 그랬든가
새 생명들이 앞 다투어 봄의 마라톤 출발 선상에 나란히
서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신비함과 그들의 질긴 생명력에
다시 한 번 감동을 받기에는 충분 하였다
어제는 사랑하는 나의 길동무 길동이와 둘이서
뒷산에 올라 가 보았다
산길 입구에 제법 규모를 갖춘 죽은 자의 집이 있었다.
잘 정리 정돈된 집을 보니 후손들의 부지런함을 보았다
나도 죽으면 저런 집을 짓고 살 수 있을까 순간 그런 생각을
하긴 하였지만 다 부질 없는 것 죽은 자는 말이 없는 것이다
다 후손들이 생색내는 형태 일뿐 그 이상의 가치는 없는 것이다
아직 진달래가 피기는 조금 이른 편이었다.
앙상한 가지 사이로 찬바람만 휭 하니 불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지난 가을 날의 화려함만 보였다.
하지만 대숲은 여전히 푸름을 잃지 않고 간간이 부른 바람에 댓잎들은
파르르 묘함 소리를 내었고 대나무들은 마치 탱고를 추듯이 흔들렸다
그런 모습들에서 언제나 변치 않는 푸른 절개를 가진 대나무들이
모여 사는 대숲이 나는 너무 좋다
길동이는 신이 나서 지칠 줄 모르고 온산을 마치 운동장처럼
날뛰며 즐거워하였는데 나는 숨이 차고 다리도 아팠다.
세월이기는 장사 없다고 하더니 그 말이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봄이 오면 꽁꽁 굳어버린 나의 몸에도 봄이 오면 좋겠다.
진달래가 활짝 피면 다시 그 곳에 가보고 싶다
내려오는 길에 활짝 핀 매화를 만났다
그곳에는 벌써 봄이 와 있었다. 이렇게 봄은 또다시 우리들 곁으로
오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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