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들에서/허주
그 곳에는 스산한 바람이 야릇한 소리를 내면서
이미 식어 버린 농부의 땀을 싣고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얼음을 덮고 있는 차가운 바위들은 말이 없었다.
길섶에는 풀들이 시들어 버린 모습으로
고흐의 자화상처럼 그려져 있었다.
화려했던 가을
나락들이 가득했던 넓은 들을 지키던 허수아비는
칼바람에 갈기갈기 찢기어 상처투성이
팔 다리를 들어내고 슬픈 모습으로 칼바람을 맞고 서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싸늘한 들에서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로
그렇게 멍청히 서 있었는지.
기온이 영화로 떨어 졌다
계곡을 타고 먼 곳 작은 도랑에 도착한 물은
차가운 찻잔속의 식어버린 차처럼 하얀 거품을 내면서
사르르 얼어붙는다.
갈대숲 언저리에 작은 집을 짓고 살던 그들이 따스한 햇살이
그리워 고개를 내밀 때 그들을 노리는 또 다른 그들이 있었다.
미처 수확하지 못했던 작은 공간에
낯 설은 그들이 몰려 와 한바탕 그들만의 축제를 열고 있었다.
그들이 이제는 겨울들의 주인이다.
농부는 가을이 떠날 때 이미 그들에게 들은 빼앗겨 버렸다
아무런 대가를 치려지 않고 넓은 들에 무혈입성(無血入城)한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전사요 영웅들이다
그래서 그들을 나는 작은 영웅 참새라 부른다.
겨울들에도 멀지 않아 봄이란 선물이 세월의 수레에 실려
도착 할 것이다 그 때 쯤 이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 갈 것이다
그 때 까지는 들은 자연의 것이니 그들에게 조금
내어 준다 하여 무엇이 아깝겠는가.
겨울들은 마무 말없이 바람의 길을 열어 주고 있었다.
나는 그 곳에서 희미한 빛을 보았다
희망의 빛을 겨울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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