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은 사라지고/허주
지난 계절에는 달이 나뭇잎 뒤에 숨어 버리더니
겨울 찬바람이 불어 닥치는 지금은 앙상한 가지에
걸려서 보잘것없이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보다
더 추위에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을 보니 겨울 속에서
밤이 깊어 가는 것 같다
부엉이 인지 소쩍새 인지 분간을 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새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묘한 분기가 흐르는 겨울밤을 그나마 저 새 소리가
나름 운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서 좋다.
내일 아침에는 하얀 서리가 얼마나 나의 차창에 내려
있을지 궁금하다
창문 넘어 보이던 불빛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을 보니
밤이 더 깊어 가는 것 같다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 예전에는 이 때 쯤 이면
구수한 목소리로 찹쌀떡 망개떡 외치는 소리를 들어 면서
쉽게 잠들고 하였는데 지금은 그 낭만의 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겨울밤이 정말 무미건조하다
그 것 뿐이겠는가 겨울밤의 낭만들은 이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모든 것이 이상하게 변해 버렸다
네온싸인으로 불야성을 이룬 도시 속에서 아무 부질없이
멍텅구리들이 모여서 흥청망청 부어라 마셔라 하는 것이
이제는 겨울밤의 일상이 되어 버렸으니 그 속에서 무슨
낭만을 찾는다 말인가.
아~옛날이여!
그 때가 참 좋았다 물질적으로는 풍족하지 못하였지만
정신과 육체가 건강하였으니 그 시절이 얼마나 소중 하였던가를
새삼 나이가 드니 느낀다.
연말연시다 벌써 송년회를 다녀왔다
이 맘 때면 늘 하는 소리들 지난 일 잊고 새해에는 더 잘하자는
틀에 박힌 소리를 모두 꿈에 낭만의 소리다
현실에 최선을 다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 한다면
되는 것을
그런 겨울밤이 흐르고 있어도 낭만의 음악은 흐르고
달은 휘영청 밝다
저 밝은 달 속으로 들어가 하룻밤 신세를 지고 싶은데
달나라 까지 가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차비는 얼마나 들지
그런 상상만 하고 밝은 달을 가슴에 품고 아침을 마지 하자.
밤이 깊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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