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에/허주
새벽이다
아직은 공간에 어둠으로 쌓여있다
문득 새롭지도 않은 언제나 그랬듯이
새로운 하루가 보고 싶어
창가에 다가섰다 기온이 낮은 탓인지
작은 창가에 하얀 김이 서려 있다
순간 떠오르는 생각 새로운 하루라는 그 글귀를
유리창에 굳은 손가락으로 새겼다
어느 듯 12월에 접어들었다 한해도 저물고 새로운
해를 맞이할 때가 되었구나.
이런 생각을 할 때쯤 새겼던 글귀가 흘러내렸다
창문을 여니 나를 반기는 것은 아직 졸고 있는
가로등과 차가운 새벽바람뿐 아무것도 없었다.
난 창가에서 보았다
아직은 검은 형체만 보이는 저 산위에 태양빛이 감돌면
서서히 또 하루가 시작되고 또 하루가 멀어져 갈 것을
이제는 한 해를 보내야 할 시간이 서서히 다가온다는 것도.
이제는 그런 것에 충실함을 보일 때가 된 것 같다
그래도 새로운 태양이 저렇게 떠오르지 않는가
햇살이 피어나는 나의 작은 공간에서
늘 함께했던 날들이 시작되고 또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음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어제 저녘무렵 보았던 아름답게 피어 사라졌던 석양처럼
이제는 또 한 해를 보낼 때가 된 것이다
어두운 밤 적막과 시름이 교차되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또다시 새벽은 오고 새벽이 그치니 이렇게 새로운 태양이
솟아오르는 것을
이별이 있으면 반드시 만남이 있는 것
그래서 이별은 만남을 낳는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이제 새로운 만남을 위해서 마음을 가다듬자
아침이다 찬바람이 분다.
서서히 한해가 저물어 가는 날들에 충실하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