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 낙서/허주
오래만이다
서산한 바람이 불더니 한줄기 비가 내렸다.
가을비라고 해야 할지 겨울비라고 해야 할지
애매묘한 시점에 내리는 비는 그래도 서글픈 사람들의
미음을 씻어주는 것 같아서 고맙다
비를 뿌리고 산허리를 돌아가는 구름을 보니
그 구름이 측은해 보였다 마치 지금의
어느 나라에 사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나의 눈에만 아니라 누구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앙상한 가지에 몇 잎 붙어 있는 이파리 들이
차가운 비를 맞고서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화려했던 가을날의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았고
계절이 바뀌는 시간이 원망 서러움에 매친 빗물이
눈물 되어 흘러내렸다.
어둠이 밀려 와 지금은 도시를 삼켜 버렸다.
줄을 선 가로등에 불빛이 보이고 지친 주인을 싣고
차들은 미친 듯이 달려간다.
하루를 보내고 그들이 가는 보금자리는 따스할까
그래도 하루를 열심히 살아준 그들에게
갈채를 보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