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묵/허주
침묵함으로 고독하고 슬프다.
그리운 친구가 소식이 끊긴지 오래 되었다
침묵이 흐르는 지금 나는 그의 이름을
거칠어진 손바닥에 예전처럼 적어 본다.
어느 여름날이었던가.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바람에 흔들리는
잎을 보면서 그 푸른빛이 영롱한 잎에다 수많은
사연들을 적어서 소식 끊어진 친구에게
붙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인가 오늘 나는 침묵 하면서
노을빛으로 물들어 가는 늦은 시간에
언제나 홀로 걷던 좁다란 들길을 거닐며 길섶에 핀
작은 가을꽃을 보면서
가을이면 그리워지는 친구에게
그립다고 소리 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침묵 하고 말았다.
깊어가는 가을 지금은
침묵 하면서 나는 그리움을 만나고 싶다 그래서
나에게서 서서히 떠나가는 가을을 내 작은 가슴에
담아서 소식 끊어진 그녀에게
가을빛으로 물든 단풍잎에다 그리움을 적어
세월을 싣고 흐르는 강물에 띄워 보내고 싶다
가을엔 난 침묵 하고 싶다
하지만 그녀를 다시 만난다면 나는 침묵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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