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어느 날/허주
아픈 만큼 성숙 해진다는 말은 아파 보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아픔이 얼마나 고통 서러운 것인지 아파 봐야만
아는 것이니까요
지난여름 정말 많이도 더웠습니다.
그 더위의 고통을 이겨내고 들꽃들은 피어나고
들판에는 곡식들이 영글어 가을날들을 기쁘게 해 줍니다
작은 화분에는 국화들이 필 준비를 마쳤습니다.
매쳐 있는 꽃 몽우리를 보니 존경 서럽게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서 피서를 떠날 때
국화는 모든 고통을 이겨 내고 그 자리에서
묵묵히 꽃을 피우기 위해 고통의 세월을 보냈으니 그 인내에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풀 한 포기에 한 그루의 나무에게 배워야 합니다.
자연이란 사람들에게는 스승이자 생명을 주는
보약 과 같은 것이니까요.
그런데 자연이라는 스승께 존경의 표현 보다는
배신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때로는 같은 사람으로서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지금 창밖에는 가을비가 내립니다.
가을비 우산 속이라는 노래 제목이 생각납니다.
가을이면 참 많이도 그 노래를 불렸는데 그 노래를
부른 가수는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가을에 비가 내리면
가을비 우산 속에 이슬 매친다는 가사가 마음을 아리게
합니다.
체면 없이 울어 대는 개구리는 누구를 위해서 우는 것인지
비가 내리니 개구리도 슬퍼서 우는 것인지 아니면 임이 그리워서
우는 것인지 아니면 가을비의 노래에 답가를 하는 것인지
체면 없이 울어 대니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립니다.
아침에 보니 느티나무 이파리가 노랗게 물들어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에서 시월의 마지막 날을 상상 하였습니다
수북이 쌓여서 쓸쓸이 부는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들의
운명을 본 것입니다
가을이 깊어 갈수록 우리들은 늙어 갑니다.
나뭇잎이 낙엽이 되어 나리면 우리들의 이마에는 인생의
쓴맛을 본 흔적만 남는 것입니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순간입니다
어제와 같은 시간이라도 어제와 다른 것은 세월이 준 선물일까요
아니면 세월이 우리들의 시간을 앗아갔기 때문일까요
구월의 막바지에 서서 지난날들을 뒤돌아봅니다.
보이는 것은 허무하게 보낸 세월만 보일뿐입니다.
그 세월이 아까워도 미련 없이 보내야 하는 것이 또한 우리들의
삶이 아닐까요. 가을비가 내립니다. 쓸쓸이.
지칠 줄 모르고 울어대는 저 개구리는 가을이
깊어 가는 것을 알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