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뜰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하루 하늘을 우러르고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르는 부끄럼 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 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모란이 피기까지는/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하게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