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마을

좋은시

해량 2012. 2. 26. 16:08

    오늘은
    오늘에만 서 있지 말고,
    오늘은
    내일과 또 오늘 사이를 발굴러라.

    건너 뛰듯
    건너 뛰듯
    오늘과 또 내일 사이를 뛰어라.

    새옷 입고
    아니, 헌옷이라도 빨아 입고,
    널뛰듯
    널뛰듯
    이쪽과 저쪽
    오늘과 내일의 리듬 사이를
    발굴러라 발굴러라.
    춤추어라 춤추어라.
 

 

 

 

 


 

새해 첫 기적 - 반칠환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 날 한 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새해 아침 - 송수권

    새해 아침은 불을 껐다 다시 켜듯이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답답하고 화나고 두렵고
    또 얼마나 허전하고 가난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지난밤 제야의 종소리에 묻어둔 꿈도
    아직 소원을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외로웠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억울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슬펐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얼마나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습니까?
    그 위에 우레와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그 위에 침묵과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낡은 수첩을 새 수첩으로 갈며
    떨리는 손으로 잊어야 할 슬픈 이름을
    두 줄로 금긋듯
    그렇게 당신은 아픈 추억을 지우십시오

    새해 아침은
    찬란한 태양을 왕관처럼 쓰고
    끓어오르는 핏덩이를 쏟아놓으십시오

    새해 아침은
    첫날밤 시집온 신부가 아침나절에는
    저 혼자서도 말문이 터져 콧노래를 부르듯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새해 새 아침 - 이해인

    새해의 시작도
    새 하루부터 시작됩니다

    시작을 잘 해야만
    빛나게 될 삶을 위해
    겸손히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아침이여

    어서
    희망의 문을 열고
    들어오십시오

    사철 내내 변치 않는
    소나무빛 옷을 입고
    기다리면서 기다리면서
    우리를 키워온 희망

    힘들어도 웃으라고
    잊을 것은 꺠긋이 잊어버리고
    어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희망은 자꾸만 우리를 재촉하네요

    어서
    기쁨의 문을 열고
    들어 오십시오

    오늘은 배추밭에 앉아
    차곡차곡 시간을 포개는 기쁨
    흙냄새 가득한
    싱싱한 목소리로
    우리를 부르네요

    땅에 충실해야 기쁨이 온다고
    기쁨으로 만들 숨은 싹을 찾아서
    잘 키워야만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조용조용 일러주네요

    어서
    사랑의 문을 열고
    들어오십시오

    언제나
    하얀 소금밭에 엎드려
    가끔은 울면서
    불을 쪼이는 사랑

    사랑에 대해
    말만 무성했던 날들이 부끄러워
    울고 싶은 우리에게
    소금들이 통통 튀며 말하네요

    사랑이란 이름으로
    여기저기 팽개쳐진 상처들을
    하얀 붕대로 싸매주라고

    새롭게 주어진 시간
    만나는 사람들을
    한결같은 따듯함으로 대하면
    그것이 사랑의 시작이라고-
    눈부신 소금곷이 말을 하네요

    시작을 잘해야만
    빛나게 될 삶을 위해
    설레이는 첫 감사로 문을 여는 아침
    천년의 기다림이 비로서 시작되는
    하늘빛 은총의 아침
    서로가 복을 빌어주는 동안에도
    이미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새해 새 아침이여
 




새롭지 않은 새해의 시 1 - 이동순

    새해가 왔는가
    미처 맞이할 겨를도 없이 불쑥
    들이닥친 길손처럼 새해는 와 버렸는가

    어제 방구석에 쌓인 먼지도 그대로
    내 서가의 해방기념시집의 찢어진 표지
    그 위를 번져 가는 곰팡도 아직 못 쓸고 있는데
    새해는 불현듯 와 버렸는가

    파헤쳐 놓은 수도공사도 끝내지 못했는데
    태어나리라던 아기예수도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데
    여지껏 나무에 대룽대룽 매달려
    애잔한 잎들은 팔랑이는데
    못다 쓴 원고뭉치는 그대로 밀려 있는데
    미처 남쪽으로 떠나지 못한 새들도 있는데
    불현듯 불현듯 새해는 왔는가

    기다리던 첫눈도 나리지 않고
    적적한 마당귀를 덮고 있는 김장독 이엉 사이로
    시궁쥐만 분주히 쏘다니는데

    새해는 왔는가
    헛꿈을 잔뜩 안고 돌아와 저 혼자 설레이는
    놈팡이처럼 새해는 왔는가 와서 무얼 하려는가

    모듬판에서 돌아오는 밤
    이미 자정을 넘겨 볼에 스미는 찬 기운
    텅 빈 호주머니와 마음 속으로
    아무거나 새것이라면 마구 채워야 하는 걸까

    해마다 와서 속절없이 가 버리는 것이
    새해일까 나라는 깨어지고 깨진 틈서리는
    서로 붙을 생각조차 품지 않는데
    보리싹 파릇파릇 움 틔우는 저 들판이
    후루룩 겨울참새를 허공에 뿌리는 그 속마음은
    무엇일까

 

 



새해 아침 - 양현근

    눈 부셔라

    저 아침
    새벽길을 내쳐 달려와
    세세년년의 산과 들,
    깊은 골짝을 돌고 돌아
    넉넉한 강물로 일어서거니
    푸른 가슴을 풀고 있거니
    이슬, 꽃, 바람, 새
    온통 그리운 것들 사이로
    이 아침이 넘쳐나거니
    남은 날들의 사랑으로
    오래 눈부시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