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마을

얼굴/박인환

해량 2013. 3. 7. 12:46

 

 

 

얼굴 / 박인환시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기를 꽂고 산들 무얼하나
꽃이 내가 아니듯 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
물빛 몸매를 감은
한 마리 외로운 학으로 산들 무얼하나

사랑하기 전부터
기다림을 배운 습성으로 인해
온밤 내 비가 내리고
이제 내 얼굴에도 강물이 흐른다

가슴에 돌단을 쌓고 손 흔들던 기억보단
간절한 것은 보고 싶다는 단 한 마디

먼지 나는 골목을 돌아서다가
언 듯 만나서 스쳐간 바람처럼
쉽게 헤어져 버린 얼굴이 아닌 바에야

신기루의 이야기도 아니고
하늘을 돌아 떨어진 별의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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