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잠자리 추억/해량허주
나의 기억이 분명 하다면
길동이의 신검이 빛을 발할 때쯤이 아마도 가을이
시작 될 무렵 이맘때가 아닌가 싶다.
잘 마른 싸릿대 끝에 삼각형을 만들고 거미줄만
챙챙 감으면 길동이표 신검은 완성되었다.
그 때도 잠자리들의 계절 감각은 지금과 같았다.
구월이 오기 전에 마을 골목골목 마다
떼를 지어 먼지보다 많이 날아 다녔으니
길동이의 신검이 바람을 가를 때마다 잠자리들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다.
잠자리 사냥을 끝낸 길동이는 마치 전장에서 승리한
장수처럼 의기양양 승리의 군가를 부르면서
사당나무 그늘아래서 딱지치기에
정신이 팔려 있는 순돌이 에게
전리품을 자랑하는 순간 포로들은 모두 날아가 버린다.
길동이는 산수 문제는 잘 풀지 못해도
잠자리 사냥에는 최고의 무사였다
그렇게 잠자리 사냥을 잘 하던 길동이도 옆집 순이 에게는
부끄러움 많은 순진한 소년 이었는데
지금은 어느 하늘아래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아마도 나만큼 늙어 있으리라.
소식 끊어진지가 한참이다.
웬일인지 가을이 왔는데도 천둥벌거숭이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보이지 않는다.
강남 갔다가 사모님들과 바람나서 돌아오지 않는 제비들처럼
잠자리들도 바람난 것인지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나르는 가을 하늘을 보고 싶다
고추잠자리 날지 않는 가을은 낭만이 없고
고추잠자리가 날지 않는 가을 들녘에 곡식은 영글어 갈까
고추잠자리가 날지 않는 가을 하늘을 높고 푸르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것 보다도 고추잠자리 추억과 길동이의 추억이
내 영혼 속에서 영원히 떠나 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세월이 간다고 해도
추억은 언제나 가슴속 깊숙이에서 숙성 되고 있는데
포도주와 추억은 오래 될수록 더 맛있게 익는다.
길가에 가로수 들이 옷을 벗기 시작하면 철새들은 떠나도
내 가슴속에 살아 있는 길동이와 고추잠자리 추억은
더욱더 맛있게 익어 가면 좋겠다.
길동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학숙제는
곤충채집이었다.
난 그 시절 너무 순진해서 순돌이라는 별명을 어른들이 지어
주었는데 길동이가 애써 잡은 고추잠자리 탈출 사건에
연류 된 것을 아마도 길동이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해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