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박인환
우리 모두 잊혀 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길을 걷고 살면 무엇 하나
꽃이 내가 아니듯
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
물빛 눈매를 닮은
한 마리의 외로운 학으로 산들 무엇 하나
사랑하기 이전부터
기다림을 배워버린 습성으로 인해
온 밤에 비가 내리고 이젠 내 얼굴에도
강물이 흐른다.
가슴에 돌담 쌓고
손 흔들던 기억보다 간절한 것은
보고 싶다는 단 한마디
먼지 나는 골목을 돌아서다가
언뜻 만나서 스쳐간 바람처럼
쉽게 잊혀져버린 얼굴이 아닌 다음에야
신기루의 이야기도 아니고
하늘을 돌아 떨어진 별의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모두 잊혀 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