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씨의 경운기/허주
순진하다 못해서 바보 서러운 이 씨가
보이지 않으면 몹시 궁금하다
며칠 전 그를 보았을 때
겨울 내 먼지를 뒤집어쓰고 겨울바람을 맞으며
밭고랑 옆에 방치되어 있던 이 씨 경운기가
기특하게도 농사철이 되니 시동이 걸렸다
그곳을 지나다닐 때 마다
저놈의 경운기는 고물상에 팔아 버리던지
아니면 갔다 버리던지 해야지 뭐하려 밭고랑에
처박아 놓았을까 몹시 궁금하였는데
다행이 시동이 걸리는 것을 보고는 참 신기하다
생각 했는데.
이 씨는 겨울 동안 마을 가게에 앉아서
막걸리 한 잔에 시름을 달래며 세월을 보내더니
그래도 농사철이 되니
봄바람에 정신 차리고 얼굴에 기름 칠갑을 하고서
경운기 고치고 있던 모습 보았을 때 기특하다 못해
아름답게 보였는데
오늘은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 씨의 경운기가 지축을 울리면서 나아갈 때
작은 마을에는 이 씨가 지배하는 작은 천국이
될 것 같은 징조가 보인다.
봄은 이 씨 밭고랑으로부터 오는 것 같다